on the way to heave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죽지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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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속으로**

[스크랩] † 고난주간 십자가상의 7언의 말씀 총정리

샤론의 수선화 2018. 3. 27. 16:33

† 고난주간 십자가상의 7언의 말씀 총정리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리시면서 7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전9시부터 낮12시까지 1~3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3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낮12시에 4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4언:"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27:46)"


낮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5언~7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5언:"내가 목마르다(요19:28)"
6언: "다 이루었다(요19:30)"
7언: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1언부터 3언의 말씀까지는 남을 위한 말씀입니다.
4언의 말씀은 앞과 뒤를 연결하는 뿌리같은 말씀입니다.
5언~7언의 말씀은 자신을 위한 말씀입니다.


제1언의 말씀부터 제 7언의 말씀까지 총정리하여 살펴봄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여 고난 뒤에 오는 부활의 영광으로

예수님과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1언과 2언의 말씀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1언과 2언의 말씀


1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1언의 말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첫 말씀은 남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고통 중에 첫 말씀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첫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은
고통 중에도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남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첫 기도는 일방적인 용서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기도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기도가 십자가상에서 있었기에
사울같이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자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납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첫 기도가 우리 속에 있게 되면

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늘이 열려 보좌에 서 계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습을 보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60)"


2언의 말씀


"오늘 네가 아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골고다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른 편에 있는 행악자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는 왼편에 있는 행악자의 십자가입니다.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왼편에 있는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면서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는
이 세상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른편에 있는 행악자는 왼편에 있는 행악자를 꾸짖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데도 십자가에 매달리는 극형을
받았습니다.
오른편에 있는 강도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의 예수님의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의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오른편에 강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
낙원이 있습니다.
오른편 강도는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낙원이라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 땅의 생명만 구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는 자가
되어 구하여 얻은 자가 됩시다.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3언과 4언의 말씀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십자가상의 7언 말씀중 3언과 4언의 말씀


예수님의 고난


3언의 말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6~27)"


예수의 모친과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모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다"


예수님은 어머니라 하지 않으시고 여자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을 보고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모친을 어머니라 하지 않으시고 여자라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신성으로 성자하나님이십니다.
신성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친을
여자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신이 될 수 없고 마리아를 신성시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캐톨릭에서는 마리아를 평생동정녀,

마리아가 승천이 되어 천사들의 여왕,
마리아 이름으로 기도, 마리아 숭배 등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일뿐이지 신성시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을 보고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하고 예수의 모친은 혈육관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보고 네 어머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요 동생도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13:50)"


십자가상의 말씀대로 요한은 예수의 모친을 어머니로 모셔
들여 함께 살았습니다.


4언의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아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태복음27:46"


예수께서 낮 12시 온 세상이 캄캄 해질 때 소리질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침묵하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의인이 악인에게 고통당하는데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침묵할 때
우리의 탄식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이까"라는 처절하게 부르짖는 소리를 냅니다.


욥은 범죄하지 않았는데도 계속적인 마귀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마귀의 일차 공격은 욥의 자녀들 일곱명의 아들과 세 명의 자녀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욥의 재산이 몰락하였습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마귀의 공격은 욥을 몸을 치니 욥의 몸에 발바닥부터
머리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견딜수 없는 아픔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욥에게 욥의 범죄가 있어 당하는 것이니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압니다.
내가 범죄하여 죄를 지은 것이 아니더라도 마귀의 공격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23:10)"


결국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시어 말씀하심으로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한 것을 욥은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내가 고통당할 때에 버리신 것이 아니라
길이 참으시는 것입니다.

고난 뒤에 찾아오는 영광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이후 부활의 영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5언과 6언의 말씀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5언과 6언의 말씀

고난주간-십자가상의 예수님 / (세개의못) / 고해


5언:"내가 목마르다(요19:28)"
6언: "다 이루었다(요19:30)"

제5언의 말씀과 제 6언의 말씀으로 고난주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십자가상에서 두 행악자가 예수님께 구하는 차이는?

 
 
제5언의 말씀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19장28절)
1.예수께서 육신적으로 목마르셨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오전 9시부터 십자가에 매달려 온몸이 탈진되어 낮 12시를 지나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상에 매달려 지칠대로 지치셨습니다.
극한 몸의 상함과 발부터 머리 끝까지 찔림이었습니다.
발에 못이 박히고 손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이 박히어
피를 흘리시니 이루말할 수 없는 갈증을 가졌습니다.
타는 입술에서 나오는 신음하는 음성은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예수께서 당하시는 십자가상의 수난은 육신적으로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마를 수 밖에 없습니다.​
2.영혼의 갈급함​
목마름은 물을 필요로 합니다.
물은 목마름을 해소해줍니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목이 마른데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이 목마르듯이 영혼의 목마름도 있습니다.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몸과 영혼으로 나누는 것을 이분법이라 합니다.
삼분법으로 하면 몸과 혼과 영입니다.
몸이 목마르면 물을 마시면 되고 영혼이 목마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어 갈급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편42:1)"
사슴이 목마르면 물이 있는 시냇물을 찾습니다.
믿는 자가 영혼의 목마를 때 찾을 것은 생명의 말씀이
있는 주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에는 영혼의 목마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체의 목마름을 통한 영혼의 목마름입니다.
사람마다 목마르면 물을 마셔야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목마름은 육체의 목마름 보다
영혼의 목마름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진정으로 육체의 목마름 보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 영혼의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사슴이 목이 마르면 물이 있는 시냇물을 찾습니다.
사람이 목이 마르면 물이 있는 곳에 가서 마시면 됩니다.
사람의 영혼이 목마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육체의 목마름으로 땅의 물을 마시지만 얼마안가 목이 말라
또 물을 마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습니다.
땅에 있는 물이 마르면 가물어져 물이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물은 기근이나 가뭄이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물은 은혜의 보좌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한복음7:37~38)"​
요한복음 4장 1절~42절은 땅에 있는 물을 마시는 것과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영원히 목마르 않은 기쁨을
얻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육체적인 목마름보다 영혼의 목마름으로
상당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낮 12시에 야곱의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육체적 목마름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고
영혼의 갈증 때문에 우울한 여인이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이 있는데 육체적 욕망으로 채울려고 하지만
채울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지 않고 육체의
욕망을 채울려고 하니까 늘 목마른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피곤하고 목마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영혼을 채우는 생수를 마실 수 있어
기쁨이 넘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신의 목마름을
정욕으로 채웠습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영혼에 채우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것 같아 늘 목마름으로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이 여인이 자신의 진정한 목마름을 해소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우물가에 온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4:13~14)"
세상이 주는 물은 바다의 소금 물 같아서 더욱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갈증을 채우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물은 목마르지 않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하십니다.
3.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육체적으로 엄청난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목마름의 연속입니다.
욕망은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욕망은 결국 채울 수 없는 갈증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편의 보좌는 생수의 근원입니다.
모든 생수의 근원은 예수님의 보좌에서 나와서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바다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좌에서 스며나오는 것이 모든 만물이 살 수 있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요한계시록22:1~2)"
온 세상 사람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습니다.
한 가지는 생수의 근원이 되는 예수님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버려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만족을 느낄려고 욕망의 물을 채우기 위해
웅덩이를 마음 깊이 파지만 결코 만족할만한 물을 채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축지 못할 웅덩이로 물이 다 새어 나가는
스스로 판 터진 웅덩이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르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웅덩이니라
(예레미야2:13)"
예수님의 산상수훈 8복 중에서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르지 않아야 복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마태복음5:6)"​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복은 세상의 복과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역설적인 표현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입니다.
세상 적인 복은 목마르지 않고 배불러야 복이 있는데 예수이 말씀하시는
복 있는 자는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의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내 영혼이 배고파서 목말라 갈급하는 사모함이
있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42:11)"
제6언의 말씀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19:30)
1.예수님의 지상사역은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방해하고 중단하게 할려고 가롯유다 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어 주어 자기 계획대로 잘 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귀는 예수만 죽이기만 하면 여전히 세상 임금으로 군림할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공중권세 잡은 자로 천하만국을 다스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마귀의 머리를 밟아 힘을 완전히 상실하게 하는
반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십니다.
말씀의 날카로운 검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예수께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2.​드디어 십자가의 도가 다 완성 되었다.
십자가의 도가 이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1:18)"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의 공격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것이
실패작으로 보게 합니다.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실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의 선포는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끝까지 매달리심으로 십자가의 놀라운 구속사를
이루셨습니다.
3.다 이루시는 예수님의 사역
세상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이 약하여 미련하게 보이고 실패한 것 처럼
보여도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반전을 일으켜 다 이루는 최종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다 이루는 것을 본받아 제자들도 순교사역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보세요.
예수께서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미련하고 가난하고 부족하고
미천한 자를 택하여 지상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린도전서1:28)"​
4.말씀대로 이루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이루시는 지상 사역은 말씀에 있는 것을 가지고 빠짐없이 다 이루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하는 행위는 미완성입니다.
가롯유다는 정치적으로 예수를 팔면 크게 달라질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 속에 들어 간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가 가롯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고나서 홀가분해 져야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족하기는 커녕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괴로와하였습니다.
가롯유다는 자기의 한 짓에 은 30냥의 댓가를 받았으나 한푼도 써 보지 못하고
괴로움에 못이겨 자살을 선택하였습니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는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태복음27:35)"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시는 거룩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의 죽음은 마귀의 올무에 걸려 마귀에게 이용당하다가
영원한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 ​구원받지 못할 죽음입니다.
가롯유다의 자살을 봄으로써 회개하지 않고 자책감으로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끓는 것은 구원받지 못할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목숨을 끓는 자살을 하면 안됩니다.
자살은 지옥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죽음을 보세요.
영생할 수 없는 죽음으로 생명의 가치가 없는 영원한 지옥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신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믿는 자는
예수님의 다 이루시는 사역에 속하여
부활의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5.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심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시는 후회가 없는 사역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26:39)"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방울이 되는 간절함으로 아버지께 구하였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아버지 뜻대로 다 이루었음 알고 제 6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희생과 수고와 사랑과 구속, 대속, 속량​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다 이루심으로 죽기까지 사랑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목숨을 다하여 생명을 내 놓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계셨으나 약하게 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약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강함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린도후서13:4)"​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기까지 약하게 되심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약해짐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린도후서12:10)"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제 7언 말씀


/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십자가상의 7언 말씀 중 제 7언의 말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23:46)"

​예수께서 고난 주간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리시었습니다.

때가 낮 12시쯤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오후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가상 7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께서 운명 직전에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23:46)"

1.쉬지 않은 예수님의 기도

[펌] 겟세마네 기도

예수님의 사역 중에 가장 많이 보내는 시간은 쉬지않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쉼을 얻고 평안을 얻는 것은 쉬지 않은 기도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본이 되신 것은 쉬지 않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낮에도 기도하시고 밤에도 기도하시고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홀로 있을 적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께서 고난 당하기 전에 저녁부터 날이 새기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는 기도였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간절히 당부하시는 것도 기도였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태복음26:41)"

2.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중언부언하지 않은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시는니라(마태복음6:7~8)"​

중언부언하지 않은 기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마음가는데로 기도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기도하여 높아지는 교만의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중언부언하지 않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첫째 중언부언하지 않은 기도는 곡조붙은 찬송의 기도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13:15)"​

최근 신곡으로 대중적 마음을 가지게 하는 복음송에는

중언부언하는 마음가는대로 노래하는 뉴에이지적입니다.​

그러므로 최근 교회 청년들 중심으로 부르는 복음송을 보세요

심지어 백업하면 마귀적인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도 없이 성령의 역사하심도 없이

아버지 뜻으로 순종하는 것도 없이 자신을 높이고 자기를

드러내는 어둠의 영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죠!​

찬송 없는 찬양에 뉴에이지의 영이 자리 잡게 함으로 마음의 감정만

자극하게 하여 청년들의 눈물이 진정 성령으로 부터 온 눈물인지

감정에 의하여 자신의 스트래스를 푸는 눈물인지 영들의 분별이 필요할 때입니다.​

둘째 중언부언하지 않은 기도는 영으로 기도하는 방언기도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0~11)"​

물론 방언에도 마귀 방언도 있습니다.

마귀 방언은 거칠게 나오고 간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방언은 질서가 있고 정신차린 방언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방언은 영으로 기도하여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게 하심으로 중언부언하지 않습니다.

셋째 중언부언하지 않은 기도는 아버지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1:21)"​

아버지 뜻대로 기도를 하기 위하여 성경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말씀과 기도에 있습니다.

영성훈련한다고 영험하다는 자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말씀과 기도에 충실한 것이 거룩해집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물리치는데 기록된 말씀과 기도에 충실하였습니다.​

3.주기도문의 시작과 끝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기도문입니다.

예배 중 포함된 공동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기독교의 3대 보배는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부르며

끝에는 영원한 아버지께 가게 하는 정석의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태복음6:9~13)"​

4.하나님 아버지께 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심을 받아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히브리서10:7)"​

삼위일체 하나님의 1위(位)되시는 성부하나님은  뜻을 정하여 ​결정하시면

2위(位)​되시는 성자하나님께서 성부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능력으로 3위(位)​ 성령하나님께서 장래 일을 말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무덤에

계시다가 하나님의 성령 생기가 들어가니 몸의 부활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으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곧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났다가 다시 태어나 거듭나는 것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 다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났다가 예수님 이름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집니다.

이는 육신으로 혈육으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하늘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났으니 또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악보]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집

​5.십자가상에서 처음의 기도를 아버지께, 마지막 기도도 아버지께!

예수님의 기도는 쉬지 않은 기도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하는 기도입니다.

십자가상에 7언의 말씀 중 처음의 1언은 아버지께 남을 위한 기도로 시작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대로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죄인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충성하는

기도로 사후세계까지 가는 통로를 여시는 기도입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를 본받아 예수를 깊이 생각할 것은

십자가상의 7언의 말씀입니다.

7언의 말씀 중 숨이 끓어지기 전 마지막 중요한 말씀을 새겨

보면서 가져야 할 것은 우리의 영혼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영혼이

있습니다.

육체는 사망이 찾아 오면 죽음으로 흙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갑니다.

그러나 육체 속에 영혼은 불멸입니다.

영혼은 불멸입니다. 영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혼는 불멸이고 사라지지 않은데 누구한테 맡겨져야 하겠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가야 할 곳은 두 군데 밖에 없습니다.

낙원이라는 천국과 음부라는 지옥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온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내 영혼을 맡기는 믿음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열매 중 충성은 죽기까지 예수 이름으로 행하다가 죽기까지

충성하는 마지막 고백은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시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신도 스데반 집사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이 열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만을 치니 스데반인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행7:59)"​

예수께서 십자가상에 7언의 말씀 중 운명 직전의 중요한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후 운명하시다(누가복음23:46)"

내 영혼을 맡길 수 있는 내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을 가슴 깊이 불러 봅시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 순례자의 노래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http://blog.naver.com/sano153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감동예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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