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회사를 차린다는 훼사장이 한국어 공부하러 왔습니다.
“이모, 우리 사업이야기 해요.”
이모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이모이모 하며 곰살맞게 구는 게 정말 질녀가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 오늘은 사업얘기로 프리토킹을 하자.”
나는 메모지를 펴놓고 볼펜을 들었습니다.
“회사 이름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모, 우리 회사 한국사람 회계 있어요. 남자에요.”
나는 회사 경리를 맡을 한국 직원이 있나보다 하면서 내 연락처를 넣어 부로슈어 초안을 뚝딱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음날 전화가 왔습니다.
“이모 회계 한국사람 이모 만나 싶어해요.”
회사 경리를 맡을 사람이 왜 나를 보자고 하냐면서 슬리퍼를 끌고 나갔습니다.
명함의 주소를 보니 같은 도시 사람이었습니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림이 잡혀집니다.
중장비 부품 공장을 하는 사업가가 베트남 진출을 하면서 법인의 컨설팅 사업은 훼사장에게 맡겼나봅니다. 한국인을 상대해야하는 훼사장이 나를 물고 들어갔습니다.
“이모 우리 안 지 오래 됐다 해요.”
내가 나이가 많다보니 면접에 떨어질까 훼사장이 걱정을 많이 합니다. 내가 만든 PPT로 일단 서류 심사는 통과됐는데 면접이 남아있습니다.
“내가 외국에 다녀보니 돈 없어 못살지, 말 못해 못살지는 않아요.”
“누님 맞습니다. 벙어리도 사는데 말 못해도 얼마든지 삽니다.”
우리는 금 새 누나 동생이 되어 면접이고 뭐고 고향사투리로 마음껏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훼사장이 자본주가 있다는 말을 회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라오스든 베트남이든 정착하는 곳의 언어는 기필코 배워야겠습니다.
훼사장 언니가 운영하는 수퍼에 나가면 그 언니도 나보고 이모, 그 집 아이들은 할머니라며 무척 따릅니다. 나는 졸지에 동생도 생기고, 조카와 손자손녀가 줄줄이 생겼습니다.
라오스 다녀오면 라이따이한들을 불러 모아 사탕 하나씩 입에 넣어놓고 동화책을 읽어줄 참입니다.
훼사장이 고향 동생 모시고 사무실 내랴, 법인 내랴 무척 바쁜가봅니다. 오늘도 공장 알아보러 간다며 공부하러 못 왔습니다.
이 나라는 무엇이든 빠릇빠릇 하지 못합니다. 아니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대부분 고무찐빵입니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훼사장이 한국 상징물을 사무실에 두기 원해서, 간직하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주었습니다. 태극기라는 말만 떠올려도 가슴이 짜안해집니다.
태극기는 얼굴을 묻고 싶은 어머니의 가슴 같은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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